시승기

BMW i3 시승기 - 2부 주행편

체리필터 2019. 5. 2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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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행편

 

당연한 얘기겠지만 시동을 걸어도 진동은 없다. 전기제품의 ON 스위치를 누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어쩌면 시동을 건다는 표현보다는 켠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기어를 D에 놓아도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다른 전기차들이 자동 미션을 가진 내연 기관 차량의 크리핑(Creeping)을 구현해둔 것과는 대조적이다. 따라서 차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수동 미션 차량과 마찬가지로 가속 페달을 밟아주어야 한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급격하게 차의 속도가 줄어든다. 가속 페달을 밟고 있을 때는 전기 모터가 차를 움직이는 에너지를 제공하지만,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전기 모터는 차량의 운동 에너지을 사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엔진 브레이크가 아주 강하게 걸린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가속 페달은 '감속' 역할도 하고 있고,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실제로 시승을 하는 동안 여유로운 운전 상황에서는 브레이크 페달을 거의 밟지 않았다. 가속 페달의 조작성은 '특정 속도를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만 밟아라'에 가깝다.

 

감속 정도는 저속과 고속이 다른데, 고속에서는 감속을 자제하고 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고속에서는 아무래도 제 속도를 유지해주는 쪽이 효율성면에서도 좋고 안전성에서도 더 좋을테니 말이다. 별도의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아도 일정 가속도 이상으로 감속이 되면 자동으로 제동등이 켜진다. 다만, 일상적인 주행시에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으면 제동등 또한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은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BMW의 다른 모델에는 상급 트림에만 들어가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기능이 i3는 기본 사양에도 탑재되어 있는데, 전방 탐지 센서는 어댑티브 크루징 목적보다는 앞차량과의 추돌을 방지하는데 더 유용하다는 듯한 생각이다. 가속 페달로만 가속-감속을 조정하다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못 밟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차량접근 경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스티어링휠을 직진 상태로 둔 상태에서 앞 차와 가까워지면 브레이크에 개입이 들어온다. >
 
정지 상태에서도 최대 토크가 발휘되는 전기 모터의 특성상, i3의 초반 가속은 훌륭하다. 특히 i3의 비슷한 크기, 성격을 가진 기존 내연 기관 차에서 찾아보기 힘든 초반 가속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가속 페달을 깊이 밟아도 약간의 전기 모터소리만 가늘게 늘릴 뿐이다. 어떤 하이브리드/전기차는 사운드 제너레이터를 통해 엔진 소리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i3는 그런 것도 없다.  유일한 소음은 시속 100km 정도를 넘어섰을 때 들려오는 풍절음, 약간의 타이어 소음 정도일까. 소음도 없고, 진동도 없고, 변속 충격도 없다는 것은 내연 기관 차에 익숙한 입장에서는 신선한 경험이다. 뿐만 아니라 탑승자의 스트레스를 줄이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실용 구간 가속은 충분하다. 속도가 올라가도 차량의 움직임은 무척 안정적이다>
 
 
주행 모드는 컴포트, 에코 프로, 에코 프로 플러스가 있고 에코 프로에서는 최대 시속과 에어컨 사용이 제한된다. 다만, 에코 프로에서도 출력이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에코 모드에서는 동력 외의 전기 사용을 제한함으로써 배터리 소모를 줄이고 있다.
 
서스펜션 세팅은 부드러운 편이다. 최근 BMW의 차량들이 서스펜션 셋업을 부드럽게 가져가고 있는데 그보다 한층 더 부드럽다. 도시 주행용 차량으로는 단단한 서스펜션 보다는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하는 서스펜션이 더 어울린다.
 
사실 i3를 시승하기 전, 가장 크게 기대했던 부분은 운동성이었다. BMW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도심용 차라고해도 운동 성능은 갖추고 있으리라는 기대감이다. 또한 총 200kg가 넘는 배터리가 시트 아래쪽에 깔려있기 때문에 무게 중심이 꽤 낮고, 우수한 코너링을 기대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기대대로 i3는 코너링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시야는 높아서 무엇인가 익숙치 않은데 차는 너무나도 코너를 잘 돌아나간다. 차의 모양에서 오는 기존의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단, 어디까지나 일상적인 주행에서의 얘기지, 스포츠 주행에도 충분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탑승차 수와 탑승 위치에 따른 운동성 변화가 조금 크게 느껴지지만, i3의 성격을 생각할 때 단점으로 보이진 않는다. 애초에 부드러운 서스펜션, 연비 위주의 폭이 좁은 타이어로 스포츠 주행을 시도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i3의 넉넉한 가속감과 뛰어난 조향 성능은 도시의 일상적인 주행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장점이다. 자고로 자동차란 내연 기관에 기계적 순수함이 최고라고 여기던 생각이 i3를 접하면서 많이 깨졌다. 분명 전기차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i3를 만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BMW는 단순히 전기로 움직이는 차가 아니라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진짜 '자동차'를 만들어냈고, 그 자동차는 한 단계 나아간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 정리
 
 
BMW는 i3를 통해 전기차가 얼마든지 기존 내연 기관 자동차들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어떤 식으로든 자동차의 원동력에 전기 에너지가 사용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곧 다가올 패러다임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면, 국내 사정상6천만원에 달하는 가격은 접근이 어려운 가격대이다. 국내 기준으로 운행 비용 절감 수준은 휘발유 대비 4배에서 15배 정도라고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비싼 금액은 맞다. 충전 인프라 또한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짧은 항속 거리와 긴 충전 시간은 전기 구동 방식의 근본적인 한계점이다. i3 역시 전기 구동 방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혁신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나마 대용량 배터리를 장착하여 항속거리를 늘린 테슬라와는 달리,  i3의 항속 거리는 완충 상태에서 100km~140km 정도로 짧은 편이고, 이런 점은 i3를 도시용 차량으로 제한할 수 밖에 없게 한다. 그러나 이런 제한적인 용도를 받아들인다면, i3는 도시용 주행으로는 매우 훌륭하고 이상적인 차다. 환경 보호에 일조한다는 가치관이 있다면 i3는 충분히 그런 멋을 부릴만한 가치가 있다. BMW i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는 다른 모든 전기 차 브랜드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소음과 매연이 없는 도심의 차도를 상상해보라. 그 멋지고 깨끗한 풍경을 i3는 만들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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