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카이엔 디젤 플래티넘 에디션 시승기

체리필터 2019. 5. 2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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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카이엔이라고 하면 포르쉐의 정체성을 상실한 차라는 혹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포르쉐하면 떠오르는 전율적인 성능과 911은 그런 이미지를 대표하는 시리즈였는데, 태생적인 물리적 한계로 운동성이 떨어지는 SUV가 포르쉐 마크를 달고 나온다는걸 매니아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카이엔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더 크지만 이는 카이엔이 포르쉐의 정체성을 살려서라기보다는, 카이엔이 워낙에 많이 팔리다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카이엔의 매출이 포르쉐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하니 수익을 내야하는 자동차 업체 입장에서는 정체성을 고집하기 이전에 시장에 뛰어드는게 당연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포르쉐가 또 다른 SUV인 마칸까지 출시하는 것을 보면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확실히 카이엔은 박스터나 카이맨, 911 같은 차들과는 다르다. 그 차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카이엔에 요구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셋업을 잘 하더라도 물리적인 한계라는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카이엔을 바라보는 시각도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RV/SUV에  기대하는 가치에 두면 어떨까? 즉, 카이엔에 대해 전통적인 포르쉐 다움을 덜 기대한다면, 카이엔이 스포츠카가 아니라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평가절하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반대로, 카이엔이 경쟁 차종에 대해 어떤 점을 더 어필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어려운 문제이겠지만 말이다. 


시승차는 카이엔 디젤 플래티넘 에디션으로, 플래티넘 에디션은 기본형 카이엔 디젤에 몇 가지 옵션이 기본으로 붙어 나왔다고 보면 된다. 내역을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으나 딜러측 얘기에 의하면, 별도로 주문했을 때 대략 천 만원이 넘는 옵션을 약 600만원 정도에 넣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제원상 엔진은 3.0 터보 디젤, 245마력, 최대토크는56.1 kg∙m 이고, 팁트로닉S 8단 자동 변속기가 채용되었다. 공차중량은 2295kg, 0-100km/h가속은 7.6초로 나와있다.


사실 3리터의 디젤 엔진은 카이엔의 라인업 중에서는 가장 성능이 낮은 엔진이다. 바로 위에 카이엔S디젤이 있고, 가솔린쪽으로는 카이엔GTS나 카이엔 터보 등의 라인업이 있기 때문에 기본형 디젤 라인은 다소 초라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제원을 다시 살펴보면 일상 생활에서는 충분히 잘 나가는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패밀리카로서 일반적인 RV/SUV의 용도를 생각하면 S,  GTS, 터보 같은 상위 모델이 굳이 필요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운이 좋게도 시승차를 막바지 여름 휴가 기간에 맞춰 받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 단위의 여행을 위한 장거리 이동, 짐을 싣는 용도로 카이엔을 살펴보기에 좋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운전자 입장이 아니라, 동승자 및 차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의 의견을 들을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얼마전에 카이엔과 형제차와 다름 없다는 투아렉을 며칠간 운행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투아렉과의 차이점을 살펴볼 기회였다. 


차의 디자인은 개인별로 선호도 차이가 큰 부분이지만, 실내의 고급감에 대해서는 특별히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실내 인테리어의 구성이나 재질, 마감 등에서 확실히 고급스러움이 묻어나고 이는 단조로운 구성의 투아렉과 가장 큰 차이를 느끼는 부분이다. 버튼이 다소 많은 듯한 인상이 있지만, 직관적이고 통일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구성이라 실제로 조작을 할 때의 불편함은 전혀 없다.




<파노라마 썬루프의 개방감은 일품이다. 차체가 큰만큼 개방감에 대한 만족도는 더 높다>








<센터페시아 가운데에는 시계와 고도계, 나침반 디스플레이가 있다.>




필자는 뒷좌석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나 동승자들은 뒷좌석 공간, 특히 넓은 레그룸과 헤드룸에 대해 만족감을 표시했다. 뒷좌석에 세 명(여성 2명, 남성1명)이 탑승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간이 부족해서 불편하다는 얘기는 없었다. 그리고 또 평가가 좋았던 부분은 시트였는데 장시간 탑승에도 엉덩이나 허리가 덜 아프다는 얘기가 있었다. 특히 평소에 허리가 안좋아서 장시간 운행에 민감하신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셔서 카이엔의 시트에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인 성인 기준으로 레그룸은 대략 이 정도의 공간이 확보된다.>


<후석 에어벤트, 열선, 시거잭 스위치 등은 기본으로 제공된다.>



시동을 걸어도 큰 소음이나 진동은 없다. 정차시 스티어링휠을 통해 느껴지는 약간의 진동은 이 차가 디젤차라는 것을 상기시켜주지만, 불만이 될 만한 요소는 아니다. 어쨌든 최근의 독일 6기통 디젤 엔진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정숙성 면에서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다. 동승자 한 분도 이 차가 디젤차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전까지는 가솔린 차로 알고 계셨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나 최근의 6기통 디젤 차량들은 소음/진동 부분에서 다들 이 정도 수준은 해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인상적인 부분은 아니다.


<작은 부분이지만 보닛 레버를 넓게 만들어 조작하기 쉽게 해두었다.>


<엔진룸 역시 잘 정비되어 있다.>

주행 소음도 잘 절제되어 있다. 필자의 목소리는 크지 않은 편인데, 얼마전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시승했을 때는 고속에서 운전석과 뒷좌석 간의 대화가 힘들었고, 원활한 대화를 하려면 목소리를 다소 크게 내야 했었다. 하지만 카이엔에서는 평상시 목소리로 편하게 대화가 가능했으며, 음악 소리가 주행 소음에 방해를 받는 정도도 훨씬 덜했다. 정차시 기준으로 차내에서 음악을 들어보면 다른 차들에 비해 카이엔의 스피커가 훌륭한 편이라 할 수는 없지만, 주행시에는 상대적으로 훌륭한 음질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가장 좋은 스피커는 방음이니 말이다. 

트렁크 공간은 각자 원하는 수준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4인 가족이 적당한 개수의 장비로 캠핑을 다니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뒷좌석 시트 1~2개를 폴딩하면 길이 2m 가량의 짐을 싣는 것도 가능하다.



가속은 딱 제원만큼 나와주는 수준이지만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부족하지 않고,  추월이 필요한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충분한 출력을 내어준다. 중량비는 1마력당 약 9.3kg(2,295kg/245마력)으로 다소 아쉽다. 참고로 벨로스터/아반떼 1.6 GDI가 약 8.8kg이고 싼타페 R2.0은 약 9.9kg이다. 저속에서의 출력 전개는 딱히 부족한 점을 느끼지 못했으며, 시속 120km/h 이상에서는 엔진 반응이 신중해지는 느낌이지만 거슬리거나 부족하지는 않다. 

가속 페달은 일반 모드와 스포트 모드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직관적인 답력을 제공한다. 가속 페달을 밟는 정도와 출력에서 오는 이질감을 줄이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이는데, 디젤 터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자연스러운 조작감은 인상적이었다. 

브레이크는 투아렉과 동일한 시스템(전륜 6P, 후륜4P)인데 카이엔이 더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다소 긴장하면서 브레이크를 밟았던 투아렉과는 달리 카이엔은 사람 5명이 타더라도 대부분의 상황에서 편하게 브레이크 조절이 가능하다. 고속이든 저속이든 원하는대로 감속/정지를 하는데 일말의 부담이 없다.


<시승차에는 265/50R/19 사이즈의 타이어가 장착되어 있었다. 카이엔 디젤의 출력을 감안하면 적정한 크기의 타이어로 보인다.>

시승차에는 에어 서스펜션이나 토크벡터링 등의 옵션은 빠져 있지만 잘 조율된 핸들링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SUV라는 물리적 한계는 있고 포르쉐라는 브랜드를 생각하면 다소 아쉬울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포르쉐의 의지는 느낄 수 있다. 코너링에서는 차가 무겁게 느껴지지만 균형은 살아있으며, 다소 과격한 코너링 중에도 스티어링휠 조작은 정확하게 작동한다. 잘 만들어진 서스펜션과 섀시는 직진, 코너링 뿐만 아니라 여러 상황에서 큰 만족감을 제공한다. 단지 필자가 카이엔의 에어 서스펜션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감탄사를 아낄 수 밖에 없는게 아쉬울 뿐이다. 


마무리 

연비는 시내주행에서는 8~9km/l, 고속 정속 주행에서는 12~14km/l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최근 유럽 브랜드의 2.0 디젤 차량의 연비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스럽겠지만, 이 차는 6기통 3000cc 디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처음 언급했던대로 패밀리카 측면에서 카이엔 디젤에는 충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실내/트렁크 공간은 다른 SUV들도 충분히 해주는 부분이지만 고속 주행시 정숙성 그리고 여타 승차감 측면에서 동승자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같이 여행을 했던 동승자들은 사실 차를 잘 모른다. 포르쉐가 이탈리아 브랜드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외형에 대한 취향으로 SUV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카이엔을 경험하고 진지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는 점이 카이엔의 매력을 증명해주는게 아닐까. 카이엔이 포르쉐의 볼륨 모델이라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주행성에 대해서는 당장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경험해본 SUV 중에서는 카이엔이 최고였지만 필자의 SUV에 대한 경험폭이 그리 넓지 않고, 카이엔S, GTS, 터보 같은 상급 트림의 파워트레인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 외에도 시승 기간 동안 필자의 지인 몇 분께서 카이엔을 시승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분들의 소감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이번 시승기를 마무리 할까 한다.

L님(2013 투아렉 V6 TDI BMT 소유)
  - “실내가 완전 다르네요. 확실히 고급스럽네요.”
  - “같은 플랫폼이라는게… 큰 의미가 없네요.” (한 시간 정도 주행 후)

H님(NF 쏘나타 2.0 소유)
  - “묵직한 주행감이 마음에 듭니다. 조용하구요.”
  - “스포트 모드가 참 인상적입니다. 참 잘 나가네요.”

K님(Mini Cooper S 2세대, 그랜저HG300 소유)
  - “어지간한 차는 다 시승해봤는데, 이 차는 기억에 남을 거 같아요.”
 
P님(BMW Z4 소유)
  - “이게 깡통이라구요? 정말요? 깡통 사도 충분하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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